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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기 왕위전 도전 3국 (김인 vs 조남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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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보(21~47) 쌍방의 실수

당시 왕위전 6연패를 달리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김인 9단은 왕위전 7연패를 향해 질주한다. 김인 9단의 7연패를 저지하기 위해 나선 도전자는 조남철 9단.

김인 9단은 왕위전 6연패의 여정 중간 조남철 9단과 두 번(4기·5회기) 왕위전 도전기를 치렀다. 이번이 두 한국바둑 국수(國手)간의 왕위전 세 번째 도전기이다. 그 중 도전 제1국을 감상해보자.

김인 9단이 4로 좌하귀를 차지하지 않고 바로 걸쳐가 급전의 양상이다. 백8도 백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한 정석이다. 초반부터 공격적인 포석을 구사하는 김인 9단이다. 흑19까지 복잡한 대사(大斜)정석 변화 중의 하나이다. 백20은 잘 쓰이지 않는 정석. A 자리로 밀어 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제2보(21~47) 쌍방의 실수

조남철 9단은 21·23으로 눌러가며 백을 압박한다. 이수로는 1도 1이 더 좋았다. 15까지 흑이 우변과 하변을 차지해 만족이다.

김인 9단은 24·26으로 모양을 정리하고 30으로 우변 실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30이 무리수였다. 2도와 같이 뒀어야 했다. 백이 34로 씌워왔을 때 흑35가 기회를 놓친 실착이다. 3도 1로 가르고 나왔으면 백이 곤란했다.

백이 36으로 자세를 갖추며 위기를 넘겼다. 37이 방향착오이다. 38자리가 쌍방의 대세점이었다. 실전은 백이 38자리를 차지해 주도권을 가져왔다. 39·41은 백을 공격해가며 우측의 흑과 연결하겠다는 좋은 전략. 45에서 당연해 보이는 46이 느렸다. 46으로는 A 자리로 가볍게 행마했어야 했다. 흑이 47로 밀어가자 백 모양이 좋지 않아졌다. 쌍방이 실수를 범하며 앞서갈 기회를 놓쳤다.

제3보(48~70) 우세를 점하다

48은 모양을 선수로 정비하기 위한 자구책(自救策). 이때 문제없어 보이는 49가 느렸다. 4도 1로 선수교환 후 3으로 가볍게 뛰었어야 했다. 이랬으면 하중앙 흑과 더 쉽게 연결을 도모할 수 있었다. 실전과 차이점은 흑53 이후 백이 54로 밀어갈 때 알 수 있다.

흑55는 자신의 약점을 지키며 백의 단점을 노리고 있다. 김인 9단도 56으로 대응하며 흑을 역공해간다. 조남철 9단이 57~63으로 끊어갈 때 나온 김인 9단의 64가 좋은 응수타진이다. 흑이 만약 5도 1로 반격하는 것은 14까지 흑이 수가 부족해 잡힌다. 흑이 69로 후수를 잡을 때 백이 70을 차지해선 백이 우세를 점했다.

제4보(71~90) 실수

71은 당연한 행마. 백이 72로 같이 뛰어 나갈 때 흑73은 조남철 9단이 71을 뒀을 때부터 노렸던 후속수단이다.

백이 76을 버림돌 삼아 80으로 막을 때 두어진 81이 이 바둑의 패착이라고 할 수 있는 큰 실수이다.

6도 1로 젖힌 후 백이 2~8로 받을 수밖에 없을 때 9로 끊어가 백 모양에 흠집을 남기는 것이 좋다. 백이 이어 14로 중앙을 막을 때 15~21까지 움직이면 아직까지 흑에게 기회가 있는 국면이다. 실전은 백86까지 상변이 너무 깔끔하게 막혔다. 백이 90을 차지해선 형세가 백에게 기울었다.

제5보(91~116) 결정타

뒤쳐진 조남철 9단이 91~97로 속도를 내며 추격에 나서지만 김인 9단은 침착하게 92~96으로 응수하며 형세를 지킨다. 104·106이 백의 결정타라고 할 수 있는 멋진 콤비네이션이다. 집이 부족한 흑은 107~111로 버텨야 한다. 백이 114 선수 후 116으로 가르고 나오자 흑의 좌변이 파괴됐다.

제6보(117~172) 왕위전 7연패 달성

흑에게 117~119로 끊는 수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하지만 120~122 교환 후 124~126으로 백이 좌변 안에서 살 수 있다. 조남철 9단이 127부터 국면을 흔들며 추격에 나섰지만 백이 152까지 완생(完生)하여 더 이상 해볼 곳이 없다.

김인 9단은 이 대국을 승리하며 선승(先勝)을 올렸고 그 기세로 3연승하여 왕위전 7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한다.

한국바둑의 1-2대 ‘일인자’ 격인 조남철 9단과 김인 9단은 1961년 10월 20일 승단대회 예선서의 첫 만남부터 1996년 10월 1일 제31회 왕위전 예선대국까지 평생 108번 승부를 겨뤘다. 20세 연하인 김인 9단이 69승 1무 38패로 앞섰지만 전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한국 바둑의 개척자’와 ‘영원한 국수’가 쟁투를 펼쳤던 60~70년대는 한국바둑이 세계최강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도약준비를 하던 시기였다.

172수끝, 백불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