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라이트 대국
홈 > 하이라이트대국
* 제29기 최고위전 도전 5국 (이창호 vs 조훈현)
목록보기

제1보(1~46) 사제대결

제29기 최고위전에서 벌어진 스승과 제자의 타이틀매치는 2-2 타이스코어로 최종국까지 오게 됐다. 유난히도 많은 눈이 내리던 1990년 2월 2일 오전, 대국장인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는 많은 보도진이 모여 있었다.

이창호 4단(당시)은 1·3 대각선 소목을 택했고 조훈현 9단은 양화점을 두었다. 6~16은 고전정석. 당시에는 호각으로 평가됐으나 최근에 들어선 백 우세로 평가가 바뀌었다. 29까지 흑 실리, 백 세력으로 잘 어울린 진행이지만 백이 약간 편하다고 할 수 있다.

30은 백의 우하귀를 고려한 귀굳힘. 31은 당연한 전개이며, 32 침입은 기세이다. 흑 33·35로 뛰어나가고 백 34·36때 흑37의 보강이 좋은 수비. 백이 38로 응수할 때 39의 응수타진이 날카롭다. 흑이 귀에서 패모양을 만들 때 조훈현 9단은 44·46으로 강하게 흑을 절단해 간다.

제2보(47~81) 과수

51까지는 서로의 기세가 충돌한 진행이다. 조훈현 9단은 멈추지 않고 52~54로 흑을 재차 끊어간다. 57 단수에는 58·60으로 틀어막아 싸울 수 있다는 뜻이나, 실은 과했다. 52로는 가 자리에 응수타진해볼 자리였다.

69까지 백이 손해를 본 진행이다. 흑이 81로 하변에 자리 잡아선 백이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주도권을 잃은 미세한 국면이다.

제3보(74~93) 패착

주도권을 되찾아오기 위해서 조훈현 9단은 82로 맥점을 터트리며 전단을 구한다.

98까지 양측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부딪치며 불꽃을 튀긴다. 호각의 절충이다.

126까지 미세한 국면이 계속 이어질 때 127이 패착성 실수였다. 가 자리가 더 컸다.

136~142 선수 끝내기가 좋아 백이 이득을 봤다.

하지만 백이 우세를 가져가는 듯 보일 시점에서 나온 144·146이 패착이다. 나 자리가 더 컸으며 그랬으면 백 우세였다.

제4보(94~145) AI 분석

47부터 57까지 사석작전 후 61로 중앙을 깎아선 흑 승리가 결정적이다.

사실 현재 형세 격차는 반집밖에 나질 않는다. 문제는 이 반집이 끝까지 좁혀지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대국 당시에는 엎치락뒤치락했던 것으로 평가되었으나 현대 AI 분석 결과 이 시점 이후에는 백에게 기회가 없었던 것으로 판명 났다. 더 놀라운 사실은 양 대국자가 이후 최선의 수순을 밟으며 끝내기를 진행했었다는 것. 물론 이창호 4단의 끝내기 솜씨야 훗날 세계 최고의 ‘신산’으로 칭송받지만, 조훈현 9단의 끝내기 실력 역시 재평가가 필요할 정도로 대단했던 것이다.

제5보(94~145) 영원히 남을 승부

최고위전은 이들 사제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기전이다.

조훈현 9단의 첫 타이틀은 제14기 최고위전(1974년)이었다.

KBS바둑왕전이 이창호 9단의 첫 우승(1989년 8월)이긴 하나 이벤트 성격이 강한 방송 속기전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창호 역시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최고위전이 첫 번째로 딴 정식기전 우승(3-2 승)이었다.

16년 전 스승이 천하통일의 발판으로 삼았던 타이틀을 이번엔 제자가 스승에게서 직접 넘겨받아 새 왕조를 구축했다. 이 역시 승부세계의 아이러니랄까. 무서운 업(業)이요 인연의 끈이다.

한국바둑 일인자의 자리를 놓고 세계바둑사에 유례가 없는 치열한 사제대결을 펼친 조훈현-이창호 두 사람은 1988년 12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무려 15년 간 69번의 타이틀매치를 벌였다. 지금까지 통산전적은 조훈현 9단이 119승 192패(승률 61.7%)로 뒤지고 있지만 실로 바둑사에 영원히 남을 승부다.

262수 끝, 흑반집승